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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율리 체, <인간에 대하여>

borymommy 2024. 5. 4. 12:38

 

 

코로나 시국, 독일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말이 소설이지 읽다 보면 인간의 근원적 불안에 대한 성찰의 글이다. 베를린에서 카피라이터로 왕성한 활동을 하는 도라는 환경운동가인 남자친구 로베르트와 함께 살고 있다. 코로나를 맞이하여 봉쇄령, 사회적 거리두기, 사적모임 금지, 마스크 착용.. 등등 광적인 로베르트에 한계와 정신적 이질감을 느끼고 베를린 근교 시골마을 브라켄에 빈집을 구입하여 혼자 이사를 간다. 이곳에서 옆집 이웃인 고테를 만난다. 그는 이 마을 나치로 거친 성장과정을 겪었고, 자기중심적인 사고와 행동으로 스스로 적을 만드는 유형의 인간이다. 반면 도라는 엄마가 병으로 어린 시절 일찍 돌아가셨지만 적당히 이성적인 의사 아빠밑에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인간이다. 객관적 데이터로 막무가내 고테와 엘리트 교육을 받은 도라가 섞이기는 쉽지 않다. 그런 이 둘의 인간애와 우성,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과정을 잔잔히 펼쳐 보여준다.

 

코로나 시국 공포에 떨며 호들갑스러운 주변인물들에게 도라는 지금까지의 자신의 인관관계에 대한 의문을 느끼기 시작한다. 과연 내가 남자친구 로베르트를 사랑하는 건가, 직장 동료와의 우정은 과연 진실인가, 지금 자신 스스로의 마음 가짐은 제대로 된 건가, 본인도 남들처럼 저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많아진 도라는 시골마을 브라켄으로 혼자 떨어져 나간다. 그곳에서 무식하고 거친 이웃집 남자 고테와는 어느 부분이 통하여 좋은 감정을 갖게 되었을까? 읽는 내내 그 요인을 찾아내려고, 나 스스로도 많은 생각을 해봤다. 인간적인 공감대를 형성한  한 건데, 꼬집어 낼 수가 없다. 뜻하지 않게 오고 가는 관계 속에서 좋은 감정이 싹튼 것이고.. 그런가 하면 독립적이고 이성적이며 편견에 치우치지 않는 도라가 우월감을 갖고 고테를 대한건 아니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이런 비슷한 게 근저에 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이성적 통제가 잘 될 뿐이다. 정신이 건강한 도라도 본인 스스로는 고테보다 나은 인간이라 생각한다. 내가 누구보다 나은 인간이라는 기준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그 기준 자체가 권력이고 폭력 아닌가.. 이 사람이 이게 장점이면 저 사람은 저게 장점이고, 저마다의 일장일단이 있다. 밤 하늘 별이 각각의 빛을 내듯이.. 소설 마지막에 고테는 스스로 교통사고를 내서 스스로 죽음을 택한다. 이로서 그는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한다. "품위" 이런 게 고테랑 어울리는 단어인가.. 그런 고테에게 이런 품위가 있었다. 베를린의 교육받은 엘리트들이 코로나로 죽을까 봐 공포로 떠는 호들갑과는 많은 대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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