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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맬컴 라우리, <화산 아래서>

borymommy 2024. 4. 14. 20:14

 

작가 맬컴 라우리는 잉글랜드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가업을 잇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뜻을 저버린다. 18세 때 화물선 갑판원으로 5개월 정도 바다에서 생활을 한다. 케임브리지 대학 영문과를 졸업 후 1933년, 화물선에서의 생활을 바탕으로 한 첫 번째 소설 <울트라마린>을 발표, 1935년에는 알코올 문제로 발작을 일으키고 정신병원에 입원을 한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질산은>을 집필했다. 1936년부터 멕시코 정착하여 <화산 아래서>를 집필 시작하여 여러 번 수정을 거쳐 1974년 출한된다. 작가는 48세에 유명을 달리하는데 <화산 아래서>의 주인공 제프리와 많은 점이 닮아 있다.  앞에 소개된 작가의 바다생활, 알코올 문제 등등이 소설 <화산 아래서>에 모두 담겨 있다. 

 

이 작품은 1938년 11월 2일, 멕시코 축일은 '죽은 자의 날'의 12시간 동안의 기록이다. 주인공 제프리 퍼민은 멕시코 주재 영국 영사이다. 이젠 영국과 멕시코의 외교단절로 본국으로 가야 하나 이곳 멕시코 외딴 지방에 남아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다. 주요 등자인물은 제프리 아내 이본, 제프리의 이복동생 휴, 제프리의 어린 시절 친구 자크이다.  이본은 남편 제프리의 음주로 이혼한 지 1년 만에 재결합을 위해 이곳 멕시코와 돌아와 있다. 신문기자 일을 하는 동생 휴도 형 제프리의 걱정으로 이곳에 와 있다.  아침에 제프리, 이본, 휴는 멕시코의 전통 축일인 '죽은 자의 날' 행사장으로 출발한다. 가는 길에 우연히 만난 제프의 친구 자크는 과거에 잠깐 이본과 불륜관계였다. 이런 사정으로 제프리도, 이본도 자크가 불편하다. 제프리는 1년 만에 돌아온 사랑하는 이본이 반갑기도 하고 불륜을 저지른 아내가 용서가 안되기도 하고 양가적인 감정이다.

 

제프리 집에서 출발하여 화산 아래까지 가는 과정에 만나는 이들, 잠깐의 에피소드, 근저에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되는 제프리의 음주가 얼히고 설켜있다. 의식의 흐름 기법도 가미된 소설이라 간단한 줄거리가 집중력을 요구한다. 이 작품 읽으면서 느낀 건데 보통은 등장인물의 심리를 이해하고 줄거리를 파악해 가며 소설을 읽는데, 의식의 흐름이 가미된 소설은 독자가 주인공 그 자체가 되어서 읽어가야 훨씬 작품의 이해력이 커진다. 내가 제프리 머릿속에 들어가 있는 맘가짐으로 음미하면서 소설을 읽으면 작품의 진가를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10년의 세월을 거쳐 출판된 작품이라는데, 읽다가 보면 소설이 많이 정제되어있고, 공들인 것을 여러군데에서 느낄 수 있다.  주요 등장인물들이 걸어가는 동선에서 현재의 심리상태를 묘사하다가 갑자기 과거로 또는 미래로 훅 들어간다, 그리고 과거를 또는 미래를 묘사하다 어느새 다시 현재의 상태로 돌아오는데 이 과정이 상당이 세련되고 아름답다. 작품을 읽으면서 몇 번 감탄을 하였다. 이런 방식으로 주요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과거 현재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대단하고, 슬쩍슬쩍 뿌려 놓은 1900년대 중반의 가치관과 정체성 붕괴, 서양 신화, 서양 고서의 문장, 예술가 언급 등은 위트 있고 고급스럽다. 읽는 내가 제대로 다 소화 못 시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주인공 제프리를 알콜중독자이다. 이전의 작품에서 접한 알코올중독자들은 외관에서 보이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면, 이 작품은 알코올중독자의 내면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아마도 작가가 알코올중독자였음이 훨씬 공감이 가고 깊이가 있는 묘사에 효과적이었으리라 여겨진다. 술을 좋아하는 나도 읽다 보면 애주가들의 머릿속을 펼쳐 놓은 느낌다. 공감 가는 부분도 많고.. 그리고 알코올은 건강 말고도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빈번한데, 제프리는 그렇지 않다. 젠틀하다. 굳이 주변에 준 피해는 아내와의 이혼인데, 제프리의 마음 상태에서는 알코올 문제가 아니어도 행복한 결혼 생활은 어려울 듯싶다. 이런 점이 읽는 이에게 지독한 알코올 중독인 제프리가 밉지가 안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인가 싶기도 하다.

 

주인공 제프리는 왜? 잠시도 술 없이는 삶을 연명할 수가 없을까? 이 작품 정보를 기반으로 하면 '고독'이라는데 세상 안 고독한 사람이 어디 있나.. 어쩔 수 없는 고독으로 인한 '좌절', '체념'의 표출이 알코올 중독으로 나오는 것 같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고, 걱정해 주는 동생이 있어도 해결 안 되는 '우울'이다. 소설을 읽다 보면 '절망의 낙원'이란 표현이 나온다. 적절하다. 제프리는 절망의 낙원을 체념한 듯 쳇바퀴 돌다가 화산 아래로 뛰어든다. 

 

<화산 아래서>는 별 내용 없다. 근데 제프리의 머릿속에 들어가 그의 동선을 따라가다 보면 흥미롭다. 이전에 읽어보진 못한 알코올중독자의 내면도 재미있고, 이런 식으로 세상을 스케치하기도 하네하는 작가의 역량도 느낄 수 있다. 집중할수로 반복할수록 진가를 느낄수 있는 작품이었다. 문제라면 읽는데 시간을 많이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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