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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접한 작가의 작품이다. 화가 고야의 사적인 이야기보다는 그의 작품활동과 주변 친구들이 그에게 미친 영향이 주로 묘사된 작품이다. 소설은 고야가 궁전에 입문하는 시기를 시작으로, 최고의 궁정 화가의 자리에 오른 후의 작품활동과 친구들과의 관계, 이후 귀머거기가 돼 가면서의 작품활동을 다루고 있다. 작가는 고야에 관한 소설을 2편으로 만들 예정이었다 한다. 이 작품은 전편에 해당한다. <고야, 혹은 인식의 혹독한 길>에는 고야의 대표 작품인 「카를로스 4세의 가족」,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 동판화 「변덕」의 제작과정 중 화가의 심경묘사, 주변 친구들의 지지 등으로 위험을 피해 가는 과정이 많은 재미를 주었다. 만일 작가가 후편까지 발표를 했다면 양민학살을 주제로 한 「1808년 5월 3일」,1820년~1823년 사이 제작된 벽화「암흑의 그림」 등이 다루어졌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고야의 작품에서 아름다움을 느끼지는 못했다. 당시 사회, 정치상황을 작품속으로 끌어안은 작가라는 것 정도의 지식 밖엔 없었다. 이전에 단편적인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고야의 위대성을 이 작품을 통해 새삼 느꼈다. 위에 언급한 고야의 작품들의 제작과정을 글로 읽으면서 화가의 심경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컸다. 고야가 문제작 「변덕」을 출판하고도 온전히 살아남은 과정의 묘사도 읽는 재미가 컸다. 사실 소설인 만큼 100% 진실보단 작가의 허구가 들어 있을 것이다. 충분한 조사 후 만들어진 작품으로 여기고 읽으면 흠잡을 데 없다. 

 

당시에 고야에게 열광하는 이들의 모습은 그의 재능을 입증해 줌에 충분하고, 고야의 위대함은 정치 사회적 불합리함을 작품속에 끌어안은 고야의 "인식"이다. 그림 잘 그리는 거야 재능만 있으면 된다지만 후자는 그렇지가 않다. 신분계급 최상층 부류들 가까이에서 느끼는 불합리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소설에서는 고야가 왜 이런 위험하고 민감한 소제를 갖고 그림을 그리게 됐는지 설명이 없다. 그냥 고야의 동물적 본능이랄까.. 그냥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느껴지는 것을 손으로 옮긴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이런 위험스러운 작품에 고야 친구들은 대부분 열광과 지지를 보냈다. 가난한 평민 출신인 고야가 학식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궁정 화가로서 누릴 수 있는 온갖 혜택(?)도 거리낌 없이 향유하는 인물이다.

 

인식을 하고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그것도 거기까지이다. 인식 또는 정신이 들어 있는 그림 작품은 관람자에게 긍정의 에너지, 위로를 준다. 마냥 이쁘기만 한 르노와르, 모네의 그림보다는 불편하지만 메시지가 들어 있는 마네, 드가의 그림에 마음이 가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이 작품 읽기 전까지의 피상적인 고야의 위대성을 직접 느끼게 한 소설이다. 영원한 민중의 대변인 고야 파이팅!!

 

고야는 「카를로스 4세의 가족」의 제작과정부터 줄타기를 하는 느낌이다. 이 작품 제작과정에 대한 묘사는 압권이다(본문 p.414~p.421). 아름다움에 가미된 추함과 불쾌함 담긴 그림이다. 평소에 이런 그림을 그리고도 고야가 목이 안 달아난 게 궁금했었는데 이 소설을 통해서 궁금증을 해결했다.

 

「카를로스 4세의 가족」, 프란시스코 고야, 연도1800-1801, 매체 캔버스에 유화, 크기336 x 280 cm, 소장처 프라도 미술관

 

「옷 입은 마하」와 「옷 벗은 마하」, 마하 시리즈는 당시 스페인의 실세였던 고도이의 주문으로 제작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소설에서는 고야가 자신의 연인인 알바 공작부인을 그린 것이고, 공작 부인 사후 고도이 소유로 넘어간 걸로 묘사되어 있다. 어느 것이 진실인지 정확히 밝혀진 건 없다. 관람객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마하의 모습은 소설 속에 묘사된 알바와 일치하나 그녀의 사회적 지위를 감안하면 파격적이다. 지금봐도 대담한 이 작품은 당시에는 소문으로만 나돌고 소수 몇명만 향유할수 있었다.

 

연도1797~1803, 매체 캔버스에 유채, 크기190 x 97 cm , 75 × 38 소장처 프라도 미술관

 

궁정화가 시절 제작된 「카를로스 4세의 가족」으로 발휘된 고야의 뚝심 내지는 작품 성향은 동판화 「변덕」으로 극대화된다. 이 작품으로 종교재판소까지 소환되기도 했다. 고야 친구들의 도움과 왕실을 방패 삼아 위험을 모면한 문제작이다.

 

동판화 「변덕」중 일부

 

개인적으로 고야의 출중한 그림실력을 보여는 초상화 한편을 소개한다. 평소 불편한 관계였던 고야의 처남을 그린 초상화이다. 

"그는 바예우의 기품과 목표를 추구하는 근면성 그리고 지성의 어떤 것도 숨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고집스러움이나 물처럼 분명한 편협성도 그려 넣었다."

 

사진이 없는 시절이니 만큼 인물화는 화가의 역량이 더욱 중요했으리라.. 바예우의 초상화를 보면 소설속에 설명한 고야의 심중이 정확히 발현되어, 그림 보는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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